분노
김태형 X 전정국
ⓒ온시
" .. 뭘 그렇게 보냐 "
" 야 "
" 뭐 "
" 그 .. 뭐더라, 너 전정국알아? "
" 아니, 전학생이야? "
" 걔 .. 그 .. 게이래 "
처음엔 별 감흥 없었다. 전학생이라는 애가 눈에 거슬리게 행동한적도 없고, 무엇보다 정국은 태형에겐 관심이 없었으니까. 태형도 그랬다. 호모포비아 그것까진 아니지만 동성애자라는 단어가 썩, 좋게 들리진 않았다. 특히나 전정국이 얼굴에 여드름이 풍성한 남자애들에게 끌려다닐땐 더욱 역겹고 얼굴보는게 싫었지만. 그렇다고 유치하게 정국을 괴롭히거나 따돌리고 싶진 않았다. 대부분 정국을 괴롭히는 목적은, 관심이겠지. 그런 꼴을 볼때마다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지곤 한다.
정국 때문이 아니라 정국을 괴롭히는걸 즐겨하는게. 또 비약하게 웃을 때마다 벌벌떠는 정국이 조금 흥미있어 보기기도 했지만, 티를 내진않았다. 가끔 그 녀석들이 왜 괴롭히는지 알것 같기도하고.
" .. 김태형 "
" ... "
" 야 "
" 어? "
" 너 아까부터 전정국만 보고 있던거 아냐? "
..뭐래. 태형의 답이 느리자 남자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관심을 져버리기로 했다.
자신의 코앞에서 덩치가 산만한 남학생들에게 맞고 치이는 꼴이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감상 아닌 감상을 하던 도중에도 태형은 집요하게 정국의 눈을 쫒았다. 뭐지, 나. 피식 웃으면서도 정국에게선 시선을 떼지 않았다. 기분나쁘고 더럽고 정국을 보면 자신이 가끔 호모포비아 같다는 생각도 해본적이 없지 않아 있다. 근데 문제는 신경쓰여 그것도 존나.

****
“ 야 미친 .. 쟤네 말려야 되는거 아니야? “
“ 냅둬 저런적이 한두번이냐 “
미친새끼들 .. 한심하다. 코끝을 찌르는 피 냄새에 태형이 이내 정국에게서의 시선을 그만두었다. 자신에게 시선한번 주기는 커녕 정국의 바닥을 향해 내리꽂은 고개는 다시 일어날줄을 몰랐다.
그때의 정국의 몸은 망신창이였다. 그냥 너무 망가져 있었다. 대놓고 훤히 들어나 있는 멍자국과 입엔 피가 새어 흐르고 있었다. 맞으면서도 울어서 인지 퉁퉁 부은 눈과 담배냄새를 맡아, 정국은 계속해서 기침하였다.
" 야 저 새끼들 심한거 아니냐? "
" 근데 .. 쟤네, 다 전정국이랑 잘려고 저러는거 아니야? "
" .. 뭔 개소리야 "
" 몰랐냐, 전정국 게이라는거 학교에 다 퍼지고 너도 나도 자겠다고 지랄들이잖아 쟤네도 그중에 속해있고 "
" "
" 전정국한테 관심 얻고 싶어서 존나 패는걸로 밖에 안보인다 나는 - "
태형의 옆에 앉아있던 한 남학생은 정국을 괴롭히는 무리들이 들리도록 크게 말하였다. 눈쎂을 꿈틀거린 남학생의 얼굴을 본 태형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들었나 보다. 야, 걍 닥쳐라. 태형이 남자아이의 입을 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쫄리는건가 설마. 분명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답이 없는 무리들에 태형이 아쉬운듯 정국을 힐끔 쳐다보았다. ...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시선을 다시 내리까는게. 아마 정국도 아까전 그 남자아이가 한말을 들었을 것이다. 목소리는 쓸떼없이 존나 커선, 쟤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했는데. 가뜩이나 큰 눈이 더 커져 있을법한 정국의 얼굴을 상상하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유치한건 내 취향 아닌데.
" 야 김태형 너 어디, "
" 너 전정국 전화번호 아냐? "
" 어?, 아니 .. "
" 아 그럼 됬고 "
" .. 걔한테 그냥 물어보면 되지 않냐? "
" 그것도 나쁘지 않네 "
태형이 그대로 등을 돌리고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내일 물어봐야겠다, 어디까지나 흥미일 뿐이니까. 대충 단정지은 태형이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남자아이들의 말도 가뿐히 무시한채 발걸음을 옮겼다.
****
" 니가 전정국이지 "
" ... "
울면서 까지 잤나. 퉁퉁부어있는 눈에 태형이 피식 웃었다. 이것보다 더 파랗게 변해있으면 어떨까. 그러나 곧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픽 웃고는 생각을 그만 뒀지만.
" 야 너 오늘도 맞았냐? "
" .. 아니 .. "
" 그럼 이따 맞겠네 "
흠칫, 자신의말에 놀라서 미간을 팍 찌푸리는 정국에 태형이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감추었다.
꽤나 놀란것인지 하얗게 질려오는 얼굴에 태형은 왠지모르게 심장이 간질거렸다. 더 하얗게 얼굴이 변하면 어떨까.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옮기는 태형에 정국은 침을 꼴깍 삼켰다. 멍이 어제보다 더 심하잖아, 금새 또 맞았구만.
생각보다 순진한 정국의 얼굴을 보니 계속해서 어제 자신에게 말하던 그남자아이의말이 아른거렸다. 저 게이년이랑 잔다니. 사실 정국의 얼굴을 보니 조금은 그럴수도 있겠다 느끼긴 했다. 취향 참 지랄맞다 김태형. 유치한건 자신의 취향이 아니더래도 정국을 보면 자꾸 움찔거리는걸.
" 야 "
" ..어 "
" 일어나 "
" ..뭐? "
정국의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형은 정국을 끌고는 반을 나갔다. 여기저기서 수근대는 소리에 정국이 고개를 조금 들었다. 아무런 반항없이 태형에게 잡힌 손목에만 시선을 고정하고는 자신의 발걸음 보다 몇배 빠른 태형의 발걸음에 맞추려 평소보다 더 빨리 걸었다.
도착한 곳은 학교 뒷골목. 흔히 말해 태형의 혼자만의 아지트라고 할 수 일을정도로 익숙하지 않은 태형의 냄새가 풍겼다. 어색한지 가만히 서있던 정국은 곧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 ..여기 어디, "
짝-
태형의 손에 의해 정국의 고개가 돌아갔다. 곧이어 주먹을 꽉 쥔 정국이 붉어진 볼을 손으로 매만졌다. 낯선곳은 적응 안되기 마련이었다. 스르륵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은 정국이 태형을 올려다 보기가 급속도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뻔한 패턴이어서 지긋지긋하게 자신을 내려다 보는 시선이 목을 죄어왔다.
무엇보다도 이 어색한 침묵이 싫었기도 했다. 그 상대가 무슨말을 꺼낼지 예상이 가기 때문이었다. 이 정적을 깬건 태형이었다. 아까전 교실에서의 해맑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훨씬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 일어나 "
" ... "
" 내 말 들리지도 않나 보지? "
" ... "
" 하긴 이런적 많았을거 아니야, 아 존나 생각할 수록 빡치네 "
태형의말에 정국의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태형이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수록 헛구역질을 참느라 태형몰래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태형은 그런 정국을 한참이나 내려다 보더니 이내 돌아섰다. 그런 정국이 태형 마음에 쏙 들어서 인지 평소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먼저 가버린 태형에 정국이 무릎에 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몸을 부르르 떨은 정국은 빠르게 일어서 교실로 향하였다. 아직도 떨리는 다리에 몇번이나 주저 앉았지만.
***
" 꺄아아악 ..!!! "
한 여학생의 비명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저절로 학생들의 시선은 여학생에게로 향하였고, 그 다음은 여학생의 시선이 닿는곳으로 향하였다. 온 몸이 피투성이의, 딱 그 모습의 정국에. 흔치않은 일이기에, 곧 주변은 쉽게 시끄러워졌다.
" 걸레정국아, 또 밥 혼자 먹어? "
" ... "
" 너 줄려고, 이름값해야지- "
태형이 정국의 귓볼에 속삭이고는 딱딱히 굳어있는 정국을 비웃더니 한손으론 걸레를 들곤 돌돌 말아 쥐어짰다.
정국의 식판은 가관이었다. 악취가 풍기는 퀘퀘한 걸레냄새에. 주변사람들은 곧 태형의 행동에 경악할뿐 아무도 먼저 나서지 못하였다.
" 밥 잘 먹어, 정국아 - "
유치하다는 말에 딱 어울리는 자신의 행동에. 태형 본인 조차도 자신이 했던 일이 어이가 없긴 했다. 그러나 자꾸만 하면 할수록 자신을 피하긴 커녕 조금의 반항이라도 있던 여전과는 다르게 정국은 더 담담해졌다. 그래도 그럴때마다 굳어지는 표정과, 왠지모르게 정국의 몸에 멍자국이 많이 질수록 자신의 것이라는 말도안되는 확신까지 들었다. 왠지모를 성취감이랄까. 정국이 조금씩 망가져 가는것을 태형은 즐겼다. 반항이 없어서 질리기보단 자신의 아래라는 생각에 오히려 더 좋았기도하고.
태형이 정국을 괴롭히고 더 붙어올수록 정국의 옆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태형은 정국을 계속해서 집착하였으며 그에 스트레스가 쌓이는건 정국이었다. 밤마다 불러내서 실컷 때리고는 또 마음에 안들땐 가끔 정국을 집에 불러 강간에 가까운 행위를 하기도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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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정국 그 미친년..!! "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 뚝. 씨발 .. 태형이 낮게 욕을 읆조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전화만 해도 68통. 정국은 계속해서 답이 없었다. 없었던 집착이 정국에게 생겨버려서 인지 태형은 정국이 자신의 옆에 없으면 저절로 불안해졌다.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태형은 옆에 있던 책들을 모조리 바닥에 떨어트렸다. 집안이 엉망이 되어버린건 순식간이었고 어느새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태형은 씩씩 거렸다.
" 야, 김태 .. "
" 전정국, 전정국 어딨어..!! "
" 야 그걸 왜 나한테 .. "
전정국 그새끼 찾아내라고 씨발 ...!! 태형이 이내 자신의 머리칼을 헝클이더니 남자아이의 휴대전화를 뺏어들었다. 역시나, 주소록에는 ' 전 정 국 ' 이 세글자의 이름이또렷하게 차지해 있었다. 야, 미친 김태형 ..!! 남자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말 애석하게도 벨소리는 얼마 안가 끊겼고, 곧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
" 너 어디야 샹년아 "
" .. 김 .. 김태, "
" 샹년아 가만히 있어주니까 지멋대로 잠수타냐, 시발 사람 좆같게 엄청 갈구네 "
" ... "
" 오늘 꼭 보자, 다시는 안 도망치게 평생 묶어둘게 "
태형이 겁에 질려있는 정국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혼자 있는 정국을 생각하면 할 수록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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