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
김태형 X 전정국
ⓒPEACH
“저거 봐.”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로의 살점을 뜯어먹는 모습을 보며, 태형이 미친 듯이 웃었다. 마약에 중독된 그들은 흡사 영화에 나오는 좀비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일명 좀비 마약이라 불리는 ‘배스솔트’를 강제로 주입시킨 결과였다. 이만한 흥미로운 일이 또 있을까. 희미하게 켜진 전구 아래에 만족한 표정이 비췄다. 그 어느 누구도 그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저에게 불똥이 튀기지 않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며 난간 위에 서 있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태형 본인의 성격 탓일 게 분명했다. 모든 것에 쉽게 질려하는 성격은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덕분에 뒤처리는 늘 남준의 몫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남준이 헐레벌떡 찾아왔지만 일은 이미 끝나 있었다. 한때, 동료였던 그들이 옅은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거칠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김 태형.”
“나한테만 뭐라 하지 마. 쟤들도 같이 구경했다고.”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참담한 표정의 동료들이 있었다. 그 어느 누가 태형에게 태클을 걸 수 있나. 자신이 저들에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태형이 자리가 잘 잡힌 얼굴을 찌푸렸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어딜 가든지 따라오는 시선들과 관심은 지긋지긋했다.
본부로 돌아오자 떠들썩한 내부에 고막이 터질 듯 했다. 태형은 격양된 모습의 지민을 발견하곤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인데 이 지랄들이야.”
“어? 김태형 왔냐. 아니 오늘 오랜만에 신입이 들어왔는데, 표정 변화 없이 애들을 다 조지고 있어.”
지민이 허리를 숙여가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저것은 일명 텃세였다. 새로 들어온 신입에겐 신고식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 갱 집단은 5년 동안이나 고인 물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얼굴의 등장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을 보고, 골려줄 생각으로 여럿이 모였었다.
자로 잰 것 같은 그의 움직임은 정직했다. 그의 실력 또한 교과서 같았다. 곧바로 나가떨어지는 저들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갱단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재밌는 흥밋거리가 생기자 지민 역시 그들과 동화되었다.
“장난 아니라고. 나 이제부터 쟤 추종자 해야지.”
“비켜 봐.”
지민을 밀치고 뜨거운 열기 속에 들어간 태형은 점점 입 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급소만을 찌르는 그의 주먹이, 발차기가 태형의 눈에 가득 찼다. 별을 박은 눈동자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희멀건 얼굴은 둘째 치고, 특히 저 입술이 마음에 들었다.
‘악질 또라이’라는 별명이 붙은 태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이 술렁거렸다. 김 태형. 그를 피하는 이유는 단지 그의 고약한 장난 때문이 아니었다. 감춰져 있는 실력뿐만 아니라 집착과 집념이 강한 이유에서였다.
“미친 새끼 또 뭔 짓 하려고.”
그를 당황하게 만들고 싶었다. 걸음걸이는 망설임이 없었다. 방어 자세를 취하는 그를 가볍게 제지한 태형이 무작정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냥 밝기만 했던 눈동자가 커졌다. 진득하게 저의 혀를 집어넣은 태형이 옅게 웃었다. 넋이 나간 그대로 물컹이는 혀를 받아들이다, 날카로운 눈매와 마주쳤다.

*
태형은 흐트러진 자세로 정국을 나른하게 쳐다봤다. 그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왜 그런 게 있지 않은가.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액체 괴물. 말랑말랑 한 것이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시도 때도 없이 정국의 귀를 만지며 노는 태형은 최근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잠잠했다.
“애 귀 떨어지겠다. 정국이 너도 귀찮으면 말해. 받아주지 말고. 김태형 쟤는 가만히 있으면 더 괴롭힌다.”
“......”
“봐봐 말도 못하잖아.”
“박지민 좀 조용히 해라. 애가 밥을 못 먹고 있잖아.”
동그란 눈이 지민에게 가 있는 것이 싫은 태형이 지민을 쏘아봤다. 정국이와 단 둘이 있고 싶은 태형에겐 눈치 없이 끼어드는 지민의 존재가 반갑지 않았다. 같은 동기생인데다가 동고동락해온 사이였지만. 별개로 먹잇감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괜히 테이블 아래 지민의 발을 사뿐히 즈려 밟았다.
“정국아, 이 또라이 같은 새끼랑 같이 다니지 마라.”
“역지사지 하지 마.”
“사돈 남 말이 맞는 거란다 이 멍청아. 그리고 그만 좀 밟아.”
“너도 멍청하네. 또라이 인증한 거잖아. 방금.”
끝이 안 보이는 싸움에 더 이상 밥을 먹으면 체할 것 같았다. 정국은 자리서 일어나 식판을 들었다. 다 먹었어? 손목을 잡아오는 찬 온기에 고개를 숙이자, 강아지 같은 얼굴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뭐라 하는 지민의 말을 무시하며 둘은 식당을 나왔다.
계절에도 각각의 향이 있다. 눈을 감고 곧 다가올 봄의 향을 맡으려 애썼다. 아직까지 서늘한 바람이 앞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눈을 뜨자, 그 앞엔 저에게 입을 맞춘 속내를 알 수 없는 태형이 서 있었다.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있겠는가. 강렬했던 그 순간을.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 안 했어요.”
양쪽 뺨이 불그스레한 걸 가만히 응시했다. 뒤돌아 걷는 정직한 어깨를 무너뜨리고 싶었다. 저 존재가 자신의 아래에서만 본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흐트러진 그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모범생. 웃기게도 이 집단에서 모범생이란 별명을 얻은 그였다. 모든 일에 순서를 놓고 움직이는 사람. 불의를 지나치지 않는 사람. 이곳에 왜 들어왔는지 도저히 이유를 몰랐다. 이것은 태형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었다.
“남준이 형.”
“어 정국이 왔어? 오늘은 또 무슨 일이야.”
“피곤해요 그냥...”
“왜, 또 태형이가 괴롭혀?”
응석부리는 정국이 귀여웠던지 단정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요즘 이곳에 들어온 이유를 망각한 것 같아요. 침대에 얼굴을 묻고는 웅얼거렸다. 남준이 저와 같은 사람인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그에게 고민거리를 조금씩 털어놓았다. 때문에 남준은 자세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정국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못하겠어요. 계속......”
“뭐가 문젠데?”
“실행이 안 돼요. 도현을 위해서라면 해야 될 일인데......”
도현은 정국의 연인이라 알고 있는 남준은 턱을 괬다.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그의 연인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깨를 잘게 떠는 그의 모습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분명 그는 울고 있으리라.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 조용히 방문을 나섰다.
충혈 된 눈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곧장 제 방으로 향했다. 이 꼴로 누군가와 마주치면 껄끄럽기 때문에 최대한 인적이 드문 길로 걸어갔다. 왜 눈물을 흘렸을까.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던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입술을 그렇게 깨물면 아프지 않아?”
벽에 기대고 있는 태형. 왜 그가 자신의 방 앞에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정국은 울었던 자신의 모습이 들킬까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복도가 어두워 예쁜 얼굴이 보이질 않으니 답답했다.
“뭐해 안 오고.”
“돌아가요.”
“내가 왜?”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요.”
“싫은데.”
“대체...!”
그는 막무가내였다. 사람이 돌아가라면 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구나 하고 돌아가는 게 정상 아닌가. 정국은 점점 열이 오르는 걸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눈치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는 쪽이 맞을 테다. 무조건 저의 감정만을 중시하는 사람. 솔직히 태형과 이런 식으로 연을 맺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원래대로라면 정국과 태형은 적이 될 관계였다. 비정상적인.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게 두려웠다.
“내가 가? 그쪽으로 가주냐고.”
“오지 마요. 그냥 돌아가시라고요.”
“너 울었잖아. 그래서 그런 거잖아. 맞지? 내가 위로해줄게.”
울었단 걸 알았으면서, 웃으며 다가오는 이유가 뭐지. 정국은 항상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태형 역시 마찬가지였다. 울 일이 뭐가 있을까. 세상에는 즐거운 일이 한 가득인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둘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무방비 상태인 모습에 정국의 손은 뒤로 향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못했다. 제 마음이 바뀌기 전에 방아쇠를 당겨버려야 한다.
도현을 죽인 남자. 사랑스러운 연인은 그의 놀잇감으로 전락해버렸다. 연인 도현의 죄라면 기분이 좋지 않았던 태형의 옆을 지나간 것 밖에는 없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제 연인의 이마에 구멍이 뚫리는 모습을 눈앞에서 경험했어야 했다. 뒤통수에 총을 갈겼으니, 앞에서 뇌수가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정국은 아무 힘이 없었다. 허망하게 죽은 연인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사실은 지독하게도 잔인했다.
“왜 그랬어요.”
태형의 머리를 조준했다. 관자놀이에 닿아있는 총구는 금방이라도 뜨거워질 듯했다. 태형은 총구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옅게 웃음을 지었다.
“나 사랑에 대해서 잘 몰라.”
“......”
“그러니까 알려주라.”
당겨야 한다. 제게 입을 맞춰오는 태형을 쳐내고 당장이라도 머리를 터뜨려야 했다. 머리가 터진 그의 위에서 마음껏 비웃어줘야 했지만. 그가 키스를 한 순간부터 나태해졌다. 태형의 앞에만 서면 긴장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애써 모른 척 하는 것도 지쳤다. 악질인 그를 동경했고, 그의 품이 편안했다. 편안해서 모든 걸 잊어버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의 타액을 섞는 이 행위가 미친 듯이 좋았다. 총구 대신 그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등에 벽이 닿고, 태형의 허리에 다리를 감은 정국은 작게 신음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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