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김태형 X 전정국
ⓒ연우로다
딸랑딸랑
“ 어서 오세요~ ”
들어서는 손님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기계적인 인사를 한다. 먼저 간 손님이 문을 열고 나간 지 몇 초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여유도 없이 오늘따라 오가는 손님들이 유난히 많았다.
흠흠. 어슬렁어슬렁 편의점 내부를 돌아보며 이것저것을 들춰보던 남자가 한참만에 태형의 앞에 섰다.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내리깔고는 몇 차례 헛기침을 한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 모습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3년 차인 태형에겐 딱히 낯선 모습도 아니었던 터라 가만히 그의 입이 열리길 기다려주었다.
“ 디스플러스 하나 주세요. ”
그 한마디에 헛기침만 몇 번인지 셀 수조차 없었다. 말을 할 땐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고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배웠을 텐데 학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열심히 굴러가는 눈동자를 보며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 신분증 주세요. ”
“ 아.. 안 가져왔는데.. ”
“ 그럼 안돼요. ”
“ 저 성인 맞아요. ”
“ 네네. 알겠으니까 신분증 가져오세요. ”
때마침 들어온 다른 손님에 태연히 인사를 건넨다. 단호한 태형에 당황한 듯 입술을 잘근이던 남자 아니 소년은 연달아 들어오는 손님들의 소란스러움에 푹 고개를 숙인 채 결국 편의점을 나갔다. 총총이며 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그제서야 며칠 전부터 대대적으로 떠들어대던 한파에 어울리지 않게 옷차림이 얇았다. 심지어 신고 있는 신발은 운동화 혹은 구두도 아닌 슬리퍼, 그것도 집안 거실에서나 신을법한 실내용 슬리퍼였다. 얇다란 티셔츠에 달린 후드를 푹 머리 위로 덮어쓰고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소년은 곧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태형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하늘아이
가끔 그렇듯 갑자기 줄지어 몰려드는 손님들에 정신없던 태형이 다음 아르바이트생에게 카운터를 넘기고 문을 나섰을 때였다. 이미 가고 없는 줄 알았던 그 소년은 편의점 한쪽 구석에 자리한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쭉 두 다리를 펴고 잔뜩 어깨를 추켜올린 채 웅크려 앉은 소년은 반듯하게 세운 제 슬리퍼 발끝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탁.
땅이 기울어진 탓인지 삐딱한 플라스틱 테이블 위로 소리 나게 유리병을 올려놓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화들짝 놀란 소년이 잔뜩 구겨진 몸을 펴지도 못한 채 빼꼼 눈을 들었다.
“ 가출했냐? ”
딱 보면 답이 나오는 모양새였다. 집을 나올 거면 옷이나 단단히 챙겨 입을 것이지... 절로 혀를 차게 만들었다. 빼꼼히 태형을 올려보던 소년이 제 앞에 놓인 유리병을 가만히 보다 냉큼 손을 뻗었다. 연한 갈색빛 꿀물이 담긴 유리병은 방금 꺼내온 것인지 꽉 손에 쥘 수 없을 만큼 따뜻했다. 찰나의 온기에 몸이 녹아내리는 듯 금세 표정이 풀어진 소년이 손에 쥔 유리병을 제 뺨에 가져다 댄다. 빨갛게 얼어붙었던 얼굴이 그 온기에 저릿저릿 전류가 흐르는지 스르르 표정을 풀었다.
“ 아니요. ”
“ 그럼 쫓겨났어? ”
“ 아니요. ”
요리조리 유리병을 양쪽 뺨에 대어가며 한기를 데우던 소년의 앞에 턱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냥 무시할 수 있었는데... 마음과는 달리 그러질 못했다. 태형은 들고 있던 담배를 익숙하게 물었다. 잠시도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는 것이 싫어 급하게 불을 붙이고는 길게 빨아들임과 동시에 쑥 주머니에 구멍이 날 정도로 깊숙이 손을 밀어 넣었다.
“ 왜. ”
뻐끔뻐끔 빠르게 줄어드는 담배 끝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소년은 태형의 입술이 움직이자 그를 따라 살짝 눈을 들었다. 입술 한쪽에 담배를 문채 조금은 어눌하게 말한 태형의 얼굴이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잔뜩 찌푸려졌다.
“ 아저씨, 저 그거 하나만 주시면 안 돼요? ”
“ 너 몇 살 이냐? ”
“ 스무 살이요. ”
“ .... ”
“ 열아홉이요. ”
“ ...... ”
“ ...열일곱... ”
풀썩 소리가 날것 같다. 축 어깨를 늘어뜨린 채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는 비죽 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숙인다. 태형은 거의 끝자락까지 태운 담배를 입에서 빼내 테이블 위에 올려진 깡통에 비벼 껐다. 부스럭부스럭 몇 개비 남지 않은 담뱃갑이 손안에 만져졌다.
“ 필 줄은 알고? ”
“ ...아뇨. ”
생각보다 솔직하다. 아니면 어차피 속여봤자 이득 날게 없다고 생각한 걸까... 줄까 말까 연신 고민을 하던 태형이 결국 주머니 속에 쥐고 있던 담배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제 눈앞에 놓인 담뱃갑을 가만히 보던 소년이 연신 굴려대던 눈을 들어 태형을 마주했다.
“ 좋지도 않은 걸 뭐 하려 하게? ”
“ 멋있잖아요. ”
“ 뭐? ”
“ 담배 피우는 남자 멋있는 거 같아서. ”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말도 안 되는 이유에 어이가 없어 웃음조차 나오질 않았다. 태형은 담뱃갑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손가락 끝에 만져지는 얇다란 물건을 꺼냈다. 학교 선배가 담배 끊으라며 쥐어주었던 민트 맛 껌이었다.
“ 야. ”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고는 다시 시선을 회피했던 소년이 휙 고개를 들어 태형을 본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벌떡 몸을 일으킨 태형이 손에 쥔 껌 한 개를 소년의 앞으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떨어진 껌을 따라 고정되었던 눈동자가 한참 후에야 다시 태형을 향해 움직였다.
“ 그거나 먹어. 백해무익한 거 굳이 배우려 들지 말고. ”
내가 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더라.. 괜히 생각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였던 거 같은데 딱히 피게 된 동기라던가 이유는 따로 없었다. 그냥 한창 이유 없는 반항에 목을 매던 시절 매캐한 연기 너머로 잔뜩 찌푸려진 선배의 얼굴이 멋있어 보여서.. 아, 그래.. 그래서였다. 그게 남자다운 건 줄 알았다. 소년을 두고 돌아선 태형이 슥슥 제 뒤통수를 긁적였다.
17세.
그 즈음의 소년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가 보다 새삼 과거를 떠올리는 태형이었다.
무시할 수 있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 곧 죽을 거라서요. ”
이상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마치 남의 일인 양 대수롭지 않게 건넨 그 말에 태형은 뭐?라는 반문조차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너무도 담담해서 현실 같지 않은 그의 얼굴이 농담이 아님을, 장난이 아님을, 그냥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 그렇게 말하면 내가 줄 것 같냐? ”
덜컥 겁이 났다. 정말 제 앞에서 피를 토하며 죽기라도 하면 어쩌나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더욱 태연히 굴었다. 잔뜩 비웃음이 섞인 얼굴로 말하자 비죽이 입술을 내밀고는 코밑까지 올려 잠근 점퍼에 푹 얼굴을 묻는다. 오늘도 옷이 얇았다. 보는 태형의 피부가 다 시려오는 기분이었다.
“ 전정국이에요. ”
묻지도 않았는데 몇 번 봤다고 제법 친한척을 해온다. 제 이름이 정국이라 말해오는 아이에게 태형은 굳이 제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정국은 매일 편의점에 왔다. 항상 거의 같은 시간에, 집 앞에 놓인 신문 따위나 집어갈 수 있을 법한 옷차림을 하고는 추위에 발갛게 얼은 얼굴을 한 채였다.
“ 진짜 안 줄 거예요? ”
“ 너 나한테 왜 그러냐. ”
굳이 안된다는 사람에게 달라 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태형은 언젠가부터 같은 시간이 되면 골목 어귀에서 직직 슬리퍼를 끌며 달려올 정국의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런 제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파드득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들려오는 문 소리에 쏜살같이 고개가 돌아갔다.
“ 파카 없어? 아님 코트라던가. ”
“ 네. 없어요 그런 거. ”
동정이던 연민이던 안돼 보이는 건 안돼 보이는 거였다. 잠시 쉬는 시간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온 태형에 정국은 잔뜩 몸을 웅크리고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턱을 올려놓고는 길게 연기를 내뿜은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곤 했다. 왜 없냐고 물으니 밖에 나갈 일이 없어 그런다고 답해왔다.
“ 근데.... 왜 죽는건데? ”
조금 짓궂은 물음이었다. 사실 딱히 궁금한 건 아니었다. 그냥 너무도 제일같지 않은 듯 말하는 모습에 묘한 반발심 같은게 일었달까..? 상처받은 얼굴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정국은 멀쩡히 그 선하고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떠 빤히 태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 하늘이 너무 사랑해서요. ”
“ 뭐? ”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태형을 보던 정국이 황당한 표정으로 저를 보는 그의 바보 같은 얼굴에 눈이 휘어 접히도록 씩 웃어 보였다. 왠지 조금 가슴이.. 간질거렸다. 태형은 익숙하지 않은 느낌에 살짝 한쪽 눈썹을 찌프렸다.
“ 하늘이 날 너무 사랑해서 빨리 데려가는 거래요. 내가 다른 누굴 사랑하면 질투 나니까 자기만 보게 하려고... ”
“ 누가.. ”
“ 우리 엄마 가요. ”
코흘리개 어린애도 믿지 않을 말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태연히도 지껄이는 모습에 태형은 말을 말자며 푹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등을 기댔다. 웃기죠. 응. 사실은 나도 안 믿어요. 다행이네. 웃음기 없이 뚝뚝한 대답에 정국은 흐흐 소리 내 웃고는 축 시선을 내린 채 가만히 생각에 잠긴 듯했다.
길게 뻗은 속눈썹이 느리게 깜빡이는 눈꺼풀을 따라 나풀나풀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아래로 곧고 높게 뻗은 콧날과 선을 그어 내리듯 예쁘게 자리한 단정한 입술이 투명할 정도로 하얀 얼굴과 어울려 곧 죽을 거라는 그의 말보다 더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 태형은 순간 제 죽음을 타인의 일처럼 가볍게 말하던 정국의 얼굴을 떠올렸다. 죽음은커녕 아픈 것 같지도 않은 말간 얼굴인데, 오늘따라 왠지 자꾸만 가슴 안쪽이 콕콕 따갑게 아픈 것 같았다.
왜 매일 같은 시간에 오냐고 물으니 일하는 사람이 쉬는 시간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무슨 일? 뭐, 그냥 서성서성 대는 일? 당최 알 수 없는 말들뿐이었다.
“ 집은 가깝냐? ”
“ 음.. 한 30분 정도 걸리는 거 같아요. ”
널리고 널린 게 편의점인데 왜 여기까지 왔냐고 물으니 다른 편의점은 직원들 얼굴이 험상궂어 혼이 날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럼 뭐야 난 만만해 보인 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그냥 정말 그냥 괜히 웃음이 나서 피식피식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흘렸다.
“ 우리 집 여기서 보이는데. ”
“ 보인다고? ”
주변엔 아파트가 없었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태형이 다니는 학교가 있었고 주변은 오래된 주택과 재래시장이 있었다. 왼쪽은 서울에서 내놓으라 하는 갑부들이 즐비하게 살고 있다는 주택단지였다. 일종의 타운을 이루고 있는 주택단지였는데 그 입구에서부터 확인되지 않은 외부인은 방문 자체가 불가능했다. 대부분 대형 저택이었고, 가구당 기본 100평이 넘는 빌라가 몇 개 있을 뿐이었다.
“ 저기, 저거. ”
정국의 손가락 끝으로 눈을 돌렸다. 저기라고? 네. 멍하니 그곳을 보던 태형이 다시 고개를 돌려 정국을 보았다.
“ 너 성이 뭐냐? ”
“ 전이요. 말했는데. 전정국이라고. ”
“ 언제? ”
“ 지난번에요. 전정국이에요라고... 말했는데. ”
“ 아... 난 전, 정국이에요. 하는 줄 알았지. ”
“ 뭐예요 그게. ”
퉁명스럽게 비죽 나온 입술에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정국이 가리킨 자리를 확인한다. 언젠가 편의점 사장이 얘기해준 적이 있었던 곳. 주택단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저택이었다. 담이 얼마나 높은지 지붕 모양조차 보이지 않는 그곳은 세계 3대 기업 중 하나인 JD 그룹의 전상욱 회장 댁이라고 했다. 뉴스 따위를 그리 즐겨보지 않는 태형도 알 수 있는 그 이름. 아마도 전상욱 회장에게 아들이 3명 있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픈 아들이 있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뒤로 한동안 정국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오려나 괜히 고개를 내빼고 길밖을 내다보지만 헛수고였다. 그리고 태형은 전상욱 회장의 아들 전정국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어렵게 찾은 어릴 적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정국의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그가 했던 모든 말들이 단숨에 현실로 다가왔다.
심장병이었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해 그의 성장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급성장기를 맞는 16세를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심한 운동은커녕 단순한 걷기 숨쉬기는 물론 감정적인 변화마저도 그의 심장에 무리를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태형이 확인한 기사는 3년 전 그러니까 정국이 14살 때 보도된 자료였다.
“ 오랜만이네. ”
“ 나 보고 싶었어요? ”
당돌하게 물어오는 얼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태형은 괜히 머쓱함에 차가운 콧잔등을 슥슥 매만지고는 습관처럼 주머니 속에 손을 밀어 넣었다. 오늘 아침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에 마지막 한 개비를 꺼내 피웠던 게 생각났다. 텅 빈 주머니 안을 헤집어대는 손가락이 조금 처량했다.
“ 아저씨. ”
“ 왜. ”
“ 애인 있어요? ”
며칠 만에 마주한 정국의 얼굴은 조금 야윈 듯 보였다. 하얀 얼굴은 핏기 없이 마른 입술이 조곤조곤 움직이는 탓에 한층 더 창백하게 느껴졌다.
“ 저는 어때요? ”
피우지 말고 남겨둘걸.. 추위에 덜덜 떨며 바쁘게 피워버린 한 개비의 담배가 너무도 절실했다. 아무것도 없는 주머니 속에서 괜스레 제 손가락만 만지작였다.
“ 싫어. ”
“ 왜요? 같은 남자라서? ”
“ 아니. ”
“ 내가 너무 잘생겨서? ”
“ 아니. ”
“ 그럼, 곧 죽을 거라서? ”
가슴이 지끈거린다. 누군가 꽉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도 한번 느껴보지 못했던 답답함이 가슴을 가득 매운다. 숨이 막힌다. 그래서 괜히 가빠 오른 숨에 코끝이 시려왔다.
예상치 못한 돌직구에 태형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잔뜩 흔들리는 그 눈동자를 가만히 보던 정국이 동그란 눈매를 접어 맑게 웃어 보인다.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태연한척 웃으며 정국이 드르륵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상처받은 것 같다. 정국이 먼저 눈을 피한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 싸워야 할 상대가 하늘인 건... 내가 너무 불리하잖아. ”
언제나와 같은 차림인데 유난히 추워 보였다. 한껏 움츠린 마른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태형의 시선은 파란 플라스틱 테이블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더 밑으로 얄팍한 슬리퍼 위로 새하얀 발등이 너무 애처로웠다.
“ 아저씨. 섹스해봤어요? ”
들이마신 담배 연기가 폐가 아닌 장기 어느 한 곳에 들이닥친 모양이었다. 가오 떨어지게 캑캑대며 기침을 한 태형이 벌게진 눈을 연신 깜빡이다 눈꼬리에 맽힌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 야 꼬맹아. ”
“ 꼬맹이 아니고 정국이요. 전정국. 키도 비슷한데 꼬맹이가 뭐예요. ”
사랑놀음의 끝은 섹스라고 대체 어떤 책에서 배운 것일까. 장난스러웠던 고백과 단호하기 그지없었던 거절 이후에도 정국은 크게 달라짐이 없었다. 태형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그런 대화가 오간 적이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태형은 담배를 즐겼고, 정국은 그런 태형을 바라보길 좋아했다.
“ 섹스하면 그렇게 좋아요? 막 황홀하고 그렇다던데.. ”
“ ... ”
“ 아... ..안 해봤구나..? ”
음흉하게 눈을 흘기며 웃는 얼굴에 확 태형의 인상이 구겨졌다. 죄송해요. 좀처럼 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변화하는 표정에 결국 키득이며 웃던 정국이 싸늘하게 식은 태형의 얼굴에 정색하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 직접 해봐. 그건 누가 말해준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 ”
담배를 입에 문채 말하는 태형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 가만히 지켜보는 정국에 태형은 뻐끔뻐끔 뿜어대던 연기 너머로 잔뜩 눈썹을 찌푸렸다.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아이. 그게 내일 혹은 오늘이 되어도 이상할게 없는 아이. 그런 그에게 대책 없이 건넨 말이 상처가 될걸 알면서도 태형은 얼버무리지 않았다.
“ 아저씨. ”
“ 왜. ”
“ 우리 섹스할래요? ”
이상한 소리 할 거면 꺼지라고 욕을 퍼부어대거나, 철저히 무시하거나. 정국이 생각한 태형의 반응일터였다. 그러나 정국의 생각과는 달리 태형의 얼굴은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평소보다 한층 더 편안해져 있었다. 거의 꽁초가 된 담배를 입에서 빼내 깡통에 비벼 끈 태형이 잠시 내렸던 눈을 들어 정국을 마주했다. 동그랗게 치켜뜬 두 눈이 올곧게 자신을 올려보고 있었다. 유난히도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 또다시 가슴이 간질거린다. 태형은 그게 뭘 말하는지 알고 있지만 스스로에게 모른다고 연거푸 답을 하고 있었다.
“ 너 스무 살 되면. ”
“ ...?? ”
“ 미성년자 딱지는 떼고 와라. ”
“ .... ”
“ 잡혀가긴 싫으니까. ”
몇 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적막감에 숨이 막힐뻔한 걸 간신히 참아낸 것뿐이었다. 치이, 그게 뭐예요. 놀라 커진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리다 바닥을 향했다. 얼렁뚱땅 차가워진 분위기를 무마시키려 투덜대던 정국이 푹 고개를 숙였다. 태형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담뱃갑을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스읍. 정국이 코를 훌쩍거렸다. 너무 춥다고 투덜대며 손가락 등으로 슥슥 코끝을 문지르는 그의 얼굴이 발갛게 물이 드는 걸 그저 지켜보았다.
태형은 자신의 말이 얼마나 잔인한 건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점점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그의 어깨를 다독여줄 생각은 없었다.
달랑~
“ 어서 오세요. ”
찬바람에 잔뜩 언 빨간 코끝을 훌쩍이며 푸스스 웃던 그 얼굴이 저 열린 문 너머로 들어설 것만 같다. 문소리에 고개를 돌린 태형이 저를 스쳐 음료수 코너로 향하는 손님의 뒷모습에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이제 다시 그 아이가 저 문을 열고 들어설 일은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태형은 같은 시간이 되면 습관처럼 고개를 돌려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을 맞았다. 이젠 한껏 얇아진 옷차림에도 코끝이 시려올 일은 없었다. 그 어렵다는 담배를 끊었다. 주머니 속에서 부스럭이는 담뱃갑을 만질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이 난 탓이었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정국을 보았다. 너무도 아름다워 현실 같지 않았던 그 아이는 티브이 속에서도 여전히 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 투명한 웃음에 태형은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는 채 울음을 삼켰다.
한번은 열린 옷자락 정도는 여미어줄걸, 발개진 코끝 한번 어루만져줄걸.... 남는건 후회와 아쉬움 뿐이었다. 그중에도 가장 오래도록 태형의 마음을 아리게 한건 슬리퍼 위로 발갛게 얼어있던 마른 발등이었다.
“ 욕심도 참 많네요. ”
누군가를 향한지도 모를 말을 건넨다. 하늘을 올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푸르르기 그지없는 하늘에 가만히 눈을 감으면 푸스스 소리 내어 웃던 그 아이의 웃음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감히 사랑했노라고, 그건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국은 하늘이 사랑한 아이였다. 하루하루 그의 마음이 자라나 감정을 담는 걸 지켜볼 수조차 없을 만큼 하늘은 그 아이를 아주 많이 사랑한 모양이었다. 애초부터 태형이 이겨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태형의 마음 따윈 온 세상을 모두 가진 하늘이 그 아이에게 준 사랑에 비하면 드넓은 바닷가의 모레 한 톨만큼도 빗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태형은 오늘도 하늘을 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눈을 감는다.
정국이 웃는다.
말간 그 웃음에 태형의 입꼬리에도 웃음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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