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
김태형 X 전정국
ⓒ태테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내어 놓는다. 배달 음식이 반, 편의점에서 사온 것이 반. 전부 나트륨 덩어리의 건강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음식이 전부이다.
빈틈이라곤 맞닿은 용기들 사이뿐인 식탁을 내려다보며 나무젓가락을 든다. 일회용 젓가락. 입안에 넣어 혓바닥을 누르자 특유의 종이 껍데기 맛이 입안을 감돈다.
근래 태형은 제게 말하고는 했다. 정국아,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그만, 응? 안달난 목소리가 조금은 애잔할 정도로 다급하고 슬프게 애원한다. 정국은 태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퍼먹다가도, 그 얼굴을 마주하면 토기를 느끼고는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볼록 나온 윗배를 붙잡고는 변기에 고개를 처박으면 물기라곤 없는 마른 주둥이에서 헛구역질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우욱, 우욱. 눈물까지 글썽이고 그러고 있자하면, 제 뒤로 기척이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태형은 그런 저의 등도 두드려주지 않았다. 그저 연민과 지침이 섞인 낯을 띠우고는 우두커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 시선이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정국은 더욱 토악질을 했다. 위가 둥글게 튀어나온 게 느껴져 배 전체가 경련을 일으키듯 아프고, 헛구역질에 코는 찡하고 위액과 섞여 나오는 토사물에 목구멍이 따가워도, 정국은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한참이고 그러고만 있다가 입을 헹구고는 다시 식탁으로 향했다. 핼쑥한 얼굴로 젓가락을 들면 망연자실한 태형이 그 앞자리에 털썩 앉는다. 온몸에 힘이 풀려, 이제 모르겠다는 듯 앉아서는 두 손 위로 얼굴을 파묻는다.
정국아.
제 이름을 한 번 더 부른다.
어떻게 해야 그만해줄래.
그 목소리가 처량하다.
제발 정국아.
정국은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음식인지 울음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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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貪
어쩌다 이 사단이 난 것인지를 되돌아본다. 베란다 벽을 따라 쌓여가는 검은 비닐 봉투를 보며, 태형은 착잡함을 느꼈다. 요즘은 담배도 영 당기지 않았다. 저것들을 보고 있자하면 모든 입맛이 떨어져 울고 싶어졌다.
집착. 그리고 원망. 이 두 가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국은 처음부터 제게 집착이 심했고, 태형은 그것을 감수해나가며 연애를 했다. 동거 아닌 동거와 사랑 아닌 사랑. 시간이 지날수록 연애는 더 이상 말 그대로의 연애가 되지를 못했다. 정 때문에 이어져 가던 가는 실이 끊긴 건, 더 이상 제 눈에 정국이 예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었다. 정국은 여전히 예쁘고 앞으로도 예쁠 것이라는 걸 말이다. 사랑에 있어 '예쁨'의 의미는 사전적 뜻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곤란했다. 껍데기 뿐인 예쁨. 더 이상 그 형용사에 사랑의 자리는 없다.
길어지는 대화가 지겨웠고 요구하던 섹스도 귀찮았다. 피곤하게 식은 눈을 하고선, 태형은 ‘권태’를 언급했다. 우리 이제 헤어지자, 정국아.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담은 청천벽력 같은 말에 정국은 동그란 두 눈을 빠르게 끔뻑였다. 뭐? 따위의 되물음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베란다로 나갔다. 그러고는 불안에 떠는 애처럼 다리를 떨며 한 자리에서 담배 반 갑을 비웠다.
태형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공포를 느꼈다. ‘망가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었다. 고장, 파손, 부서짐, 손상, 파멸.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들을 마른침과 삼키고는 저와 비슷한 체격의 등짝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날 이후였다. 정국에게 이상한 식탐이 생긴 게 말이다. 게걸스럽기 짝이 없는 광경을 보며 끝이 없는 사죄를 하는 것도, 그날 뒤로부터였다. 정국은 점점 괴기해졌다.
아무 말 없이 방안으로 들어가는 정국을 보며 태형은 주저앉아 마른얼굴을 쓸어내렸다. 정국아. 차마 내뱉지 못한 이름이 입안을 맴돌다 목구멍 아래로 삼켜졌다.
한참이 지나고, 아마 저녁 일곱 시는 됐을 때쯤, 정국은 갑작스레 집을 나갔다. 거실에 가만히 앉아있던 태형은 당황스러움에 현관문을 한참이고 쳐다봤다.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갑자기 제 뒤 베란다로 어떠한 형체라도 떨어져 내릴까, 혹은 갑자기 울리는 전화에 받으면 정국의 사망소식이 들리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불안과 초조를 못 이겨 집을 나서려고 할 때, 도어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정국의 손에는 묵직한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연달아,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현관에 놓아지는 수많은 배달음식을 보며 태형은 미간을 좁혔다.
-정국아?
그 부름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정국은 대답도 없이, 그것들을 현관에 주저앉아 먹기 시작했다. 음식이 포장된 봉투를 거칠게 찢어내고, 상자를 찢듯이 열어내고는 식기라곤 쓰지 않고 손으로 한 움큼 붙잡아 입으로 쑤셔 넣었다. 음식이 섞여 도통 모를 맛일 게 분명한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목구멍에 닿을 듯이 넣었다.
태형은 난생 처음 느끼는 공포심에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찬 베란다 문이 등에 닿을 때까지, 뒷걸음질 쳐 정국에게서 멀어졌다. 흰 얼굴 여기저기에 묻은 갖가지 양념들과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끈적한 양념들. 먹으면서도 못내 헛구역질을 하며 괴로움을 토해내는 얼굴. 그것이 망가짐의 시작이었다.
정국은 날이 갈수록 야위어져갔다. 날개 뼈와 척추 뼈가 흰 티 아래에서 모양을 그대로 드러냈다. 늘어진 목에 보이는 쇄골은 너무 도드라져 세게 만지면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가는 목선과 얄쌍하기 짝이 없는 턱선. 파리해진 안색으로 긴 속눈썹을 느리게 움직인다. 꼭 어디선가 본 명화 속 주인공 같은 모습이다. 태형은 그런 정국의 몸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삼켰다. 우리 어쩌다 이렇게 됐니. 입은 열리지 않는다. 그저 흐느끼는 소리가 텅 비어버린 정국의 몸 안으로 삼켜 들어갈 뿐이다.
태형은 정국을 사랑했다. 그 시간은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로지 진심이었기 때문에, 정국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제가 받아왔던 사랑과 제가 퍼부었던 사랑. 상대의 그릇된 사랑 표현과 그것으로 인해 점점 문드러지는 자신. 어쩌면 이 모든 건 운명이다.
새벽 다섯 시. 일찌감치 눈을 뜨고는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찬 바닥을 밟으며 향한 곳은 화장실이다. 변기 맡, 제 토악질에 못 버텨 쓰러져 있는 정국을 안아든다. 그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고, 너무나 가벼워져버린 몸을 들어 침대로 옮긴다.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 얼굴을 보며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는 건 말이다.
미친 듯이 퍼먹고는, 그 퍼먹은 것에 배로 내뱉는다. 토할 때마다 보이는 상체를 떠올린다. 가는 허리선과 피골이 상접해 뼈가 도드라지는 등과 가슴팍. 윗배는 볼록하게 튀어나왔는데 그 아래는 가죽밖에 없는, 참 묘하고 기이한 모습. 짧은 반바지에 보이는 허벅지. 그 허벅지 안쪽을 가로지르는 허벅지 뼈를 가만히 보고 있자하면 울분이 솟구쳤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어쩌다 이렇게 됐니.
답 없는 질문은 오늘도 태형의 문드러진 속안을 헤집는다.
꼭 닫힌 문 너머 베란다를 쳐다본다. 일렬로 늘어진 검은 봉투 위로 날아다니는 파리들을 보며, 태형은 암담함을 느꼈다.
“정국아.”
목소리가 볼품없이 갈라진다. 바짝 마른 입술 끝이 찢어지는 게 느껴졌다. 비릿한 피 맛에 입술을 축이며, 태형은 실소를 지었다.
“정국아, 듣고 있어?”
정국의 발치에 쏟아진 대량의 우유를 보며 태형은 눈물을 흘렸다. 건조하게 마른 얼굴에 눈물자국이 드리운다. 정국을 챙기느라 덩달아 핼쑥해진 태형의 얼굴이 울분으로 삼켜졌다. 도드라진 발등 뼈로 눈물이 계속 떨어진다.
“전정국……, 제발 그만해주라……, 응? 제발……”
식탁 위 잔뜩 어지럽혀진 음식들이 난잡하게 뒤섞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정국은 우는 태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태형의 애절한 시선이 닿자 정국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입술에서 뭔지 모를 양념 맛이 났다. 역한 속을 달래며, 정국은 포크를 집어 들었다. 당장에 허벅지라도 찌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고개를 숙인다. 동그란 머리통이 아래로 고꾸라지고, 힘없는 머리칼이 몸의 떨림에 따라 같이 흔들린다.
“멈출 수 없어.”
“정국아.”
“모든 걸 다. 먹는 것도, 토하는 것도……,”
널 좋아하는 것도, 이 욕심들을 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뒷말은 삼켜졌다. 동시에 올라오는 토기에 정국은 화장실로 향했다. 휘청거리는 걸음에서 우유물이 흔적을 남겼다. 태형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눈물에 가쁜 숨을 뱉으며 눈을 감았다.
“우리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정국아.”
오늘도 돌아오는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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